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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덕산성 대명9동 ○ 대덕산성은 대구지방에서 가장 험준한 산세에 축성한 산성으로써 대구분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다.
○ 이 산성은 말발굽 모양의 포곡형 산성이고 성벽은 대덕산 정상의 준령과 산기슭의 능선을 따라 쌓았으며, 그 둘레가 약 3,000m나 되고 건물터 주변의 기와조각이나 토기조각은 모두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에 걸쳐 사용되었던 종류이고 고려자기조각도 몇 점 있는 것으로 보아 대덕산성은 후삼국시대에 쌓아서 고려시대까지 사용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.
봉덕토성 봉덕2동 ○봉덕토성은 신천을 따라 용머리처럼 시가지쪽으로 튀어 나온 대덕산의 산기슭에 쌓아진 토성으로 완만한 산기슭의 능선둘레에 타원형으로 머리띠 돌리듯 성벽을 쌓았음.
(일명 용두산토성)
  ○ 성지가 있는 구릉상에는 김해식 토기조각과 삼국시대 경질토기조각이 흩어져 있고 성벽구조가 흙과 돌을  섞은 벽이고 규모가 작은 구릉토성인 점으로 보아 삼국시대 초기의 것으로 여기진다.
  ○성의 규모는 남북길이가 약 150m, 최대폭이 약 50m, 둘레가 약 400m이다.
왕    굴 대명6동 ○태조 왕건이 장수로 있을 때 후백제 견훤의 난을 막으로 갔다고 팔공산 전투에서 대패하여 혼자서 비슬산으로 피난을 왔다고 한다. 은적사에서 3일 동안 피신해 있다가 왕굴에서 피신하여 쉬어갔다고 한다.
○ 피신 중 견휜의 부대가 근처에까지 와서 왕건을 찾으려고 하자 갑자기 운해가 가득하고, 왕거미줄이 쳐져서 크지 않은 굴인데도 사람이 피신했는지 안했는지 흔적조차 알 수 없었다고 한다.
그래서 무사히 그 난을 피하고 고려 창업을 위해서 기도정진할 수 있었다고 하여 왕굴이라는 명칭이 생겼다고 한다.
자료:문화홍보과